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건축 (문단 편집) === 고려 시대 건축 === [[파일:attachment/Karch02.jpg|width=500px]] [[파일:16665639516B84DD2E5F1A.jpg|width=500px]] [[파일:emiruk.jpg|width=500px]] [[파일:attachment/koreaarch.jpg|width=500px]] [[고려]]의 관경서분변상도. 정토삼부경경 가운데 [[관무량수경]] 속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일상화라기 보다는 불화이고, 굉장히 과장된 묘사지만, 건축이나 복식 면에서는 당시의 고려 양식으로 [[로컬라이징]] 되어 있어 다른 그림들과도 유사하게 일관성을 보이기에 고증 자료로 참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http://luckcrow.egloos.com/2655835|고려변상도는 그저 종교화일까? 다른나라의 변상도에 나오는 건축과 문화]] [[http://luckcrow.egloos.com/2628682|고려회화, 아집도 대련 중 하앙으로 보이는 구조물 발견]] 사치스러움을 억제하고 검소함을 지향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시대는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귀족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현대의 시각으로 보아도 매우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송나라]] 사신이 기록한 [[고려도경]]에서는 '관리들과 국상 부자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사치스러워졌다'는 내용과 '선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수십집 가운데 하나씩 누각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https://vpb192kh.tistory.com/entry/%EC%A7%80%EC%8B%9D-%EA%B3%A0%EB%A0%A4%EC%8B%9C%EB%8C%80-%EA%B1%B4%EC%B6%95-%EC%96%91%EC%8B%9D%EC%9D%84-%EC%95%8C%EC%88%98%EC%9E%88%EB%8A%94-%EA%B3%A0%EB%A0%A4-%EA%B8%88%EB%8F%99%EC%82%BC%EC%A1%B4%EB%B6%88%EA%B0%90|어느 역덕이 재현한 고려시대 건축]][[https://vpb192kh.tistory.com/entry/%EC%82%B0%EC%84%B1-%EC%84%B1%EB%B2%BD-%EA%B1%B4%EC%B6%95%EB%AC%BC-%EC%84%B1%EB%9E%91-%EA%B7%B8%EB%A6%AC%EA%B3%A0-%ED%9D%91%EC%9C%A0%EC%99%80-%EC%9A%B0%EC%A7%84%EA%B0%81%EC%A7%80%EB%B6%95-%EA%B3%A0%EB%A0%A4%EC%8B%9C%EB%8C%80-%EA%B1%B4%EB%AC%BC|성문이 무려 25m!? 고려시대 산성 성벽 건축물 성랑, 그리고 흑유와 우진각지붕 고려시대 건물]][[https://vpb192kh.tistory.com/entry/%EA%B3%A0%EB%A0%A4-%EC%82%AC%EC%84%9C%EA%B8%B0%EB%A1%9D%EA%B3%BC-%EA%B3%A0%EC%84%9C%ED%99%94%EA%B0%80-%EA%B5%90%EC%B0%A8%EA%B2%80%EC%A6%9D-%EB%90%9C%EB%8B%A4-%EC%82%AC%EC%84%9C%EA%B8%B0%EB%A1%9D-%EA%B8%B0%EB%91%A5%EA%B8%B8%EC%9D%B4%EB%A5%BC-%EC%9E%AC%ED%98%84%ED%95%9C-%EA%B3%A0%EB%A0%A4%EC%8B%9C%EB%8C%80-2%EC%B8%B5-%EA%B1%B4%EB%AC%BC%EB%93%A4-Feat-%EC%84%B8%EC%A2%85%EB%8C%80%EC%99%95-%EB%86%92%EC%9D%B4-22m%EA%B1%B4%EB%AC%BC|사서기록과 고서화가 교차검증 된다!? - 사서기록 기둥길이를 재현한 고려시대 2층 건물들]] 그림이나 기록 등 남아있는 자료들로 보아 붉은색의 주칠(朱漆)과 검은색의 흑칠(黑漆) 등 [[옻칠]]을 이용한 [[단청]]을 궁궐, 사찰, 귀족들의 주택 등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도경에서는 '궁궐 건물에 난간은 붉은 옻칠을 하고 동화(銅花)를 장식하였으며 단청이 장엄하고 화려하다', '청자로 된 기와와 흙담벽에 중국 직수입 비단을 둘러 장식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이 외에도 전각에 옻을 칠해서 호화롭게 만들었다는 기록 등이 있다. 기본적인 색상 자체는 삼국시대부터 보이는 전통적인 단청 양식인 주칠 양식을 바탕으로 하되 [[원나라]]와 접한 이후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붉은색(갈색)+푸른색(녹색) 상록하단 양식이 등장한다.[* 갈색으로 칠하는 양식 자체는 [[고구려]] 건축에서도 사용하긴 했다.] 이렇게 옻칠과 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양식은 [[당나라]], [[송나라]]를 필두로 동아시아 전반에서 유행한 양식이었으며 당시 사용한 금속 부품, 특수한 재료로 만든 기와, 실내용 타일 등이 지금도 출토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일본에만 남아 있는 양식이 되었으므로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재현한다면 지금의 일본 건물과 유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study.zumst.com/%EB%AC%B8%EB%B2%8C%20%EA%B7%80%EC%A1%B1%20-%20%EC%95%84%EC%A7%91%EB%8F%84%20%EB%8C%80%EB%A0%A8.png|width=500px]] 고려 귀족들의 생활상을 그린 아집도대련 중 일부. 바닥에 타일을 깐 외실과 문을 걸어닫은 내실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귀족층은 입식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수도 있으나 고려도경 기록에서는 '고려의 왕은 날마다 편좌(便座)에 앉아 정사를 보는데 평상에는 인욕(왕골, 부들로 짠 돗자리)을 깔고 앉아 정사를 본다'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입식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파일:external/dvdprime.donga.com/4245136_20090830132737406.jpg|width=500px]] 공민왕이 그렸다는 기위도. 3시 방향에 당파풍(唐破風)으로 추정되는 둥근 지붕이 보인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의 눈에 띄는 큰 건물로는 개경의 도심 사찰이었던 [[보제사]]의 5층 목탑이 있으며, 조선시대 전기까지 존재했다고 하는데 높이가 약 60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보제사의 이름은 조선시대가 되어 연복사로 바뀐다. >십천교를 지나 곧바로 가서 연복사에 이르렀다. >한 중앙에 우뚝 솟은 5층 누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서 있는데, >창문과 기왓장에 저녁놀이 비친다. >참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 >유호인 명산답사기 중 <송도기행> 나무위키에 등재된 주요 건물: [[만월대]] - 고려시대 본궁터다.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9267&categoryId=49267&so=st4.asc/|문화컨텐츠닷컴 백과]]에서 3D로 복원한 영상이 있으니 참고. 한옥이라 하면 좌식 온돌방만을 떠올리는 선입견과 많이 다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6478&categoryId=49267&cid=49267|고려시대 부유한 평민가옥]]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6479&categoryId=49267&cid=49267|고려시대 귀족저택]]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6480&categoryId=49267&cid=49267|고려시대 별궁]]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6481&categoryId=49267&cid=49267|고려시대 가옥구조]] 반대로 서민들의 주거는 수혈 주거, 즉 '''움막'''과 비슷한 열악한 환경을 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